올 추석은 휴일이 길다.
9월 18일(토)부터 22일(수)까지 무려 5일을 쉰다.
좀 여유가 있는 직장인이면 뒤 2일을 붙여서 무려 9일을 쉴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긴 휴가를 맞아 식구들과 극장에 갔다.
오후 6시가 넘어서 끝나는 영화는 2인 이상이 볼 수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4명이 볼 수 있었다.
식구들의 연령 폭이 넓어 어떤걸 봐야하나 얘기하니
그리 어렵지 않게 보고싶은 영화가 정해졌다.
기적
추석 연휴 코앞인 9월 15일에 개봉한 영화로,
시골 간이역 설립과 관련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일화라고 했다.
본디 올 6월 개봉 예정이었지만 그때는 영화계 사정이 너무 안좋았는지 이맘때로 일정을 늦췄다.
결과적으로 현재 CGV 예매 기준 3위에 랭크되어 나쁘지 않은 흥행을 하는것 같다.
관건은 얼마나 롱런하며 흥행을 이어가느냐겠지...
극장에는 사람들이 생각했던것보다는 많이 있었다.
아마도 연휴가 긴 덕이리라.
그렇지만 코로나 이전의 극장 모습과 비교하면 턱도 없이 적은 수였다.
아직 코로나 쇼크를 온전히 극복하진 못한 것이다.
극장 안에서 영화가 시작되면 뭔가 씹어먹는것은 금지되었다.
당연히 팝콘도 금지다.
물론, 영화 시작하기 전에 다 먹으면 되지만... 그건 좀 그렇다.
결국 우리 일행은 음료수만 사서 들어갔다.
좌석은 군데 군데 이가 빠진 채로 넓게 차 있었다.
이 역시 코로나로 인해 일행들을 한 간씩 띄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이장훈 감독은 소지섭과 손예진이 주연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연출한 감독이다.
이런 류의 잔잔한 드라마를 선호하는것 같다.
남자 주인공 박정민은 그 영화의 완성도를 보증하게끔 하는 명배우다.
많지 않은 나이에 그런 연기 폭을 가졌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박정민이 나온 영화 중 기억 나는 것은 그것만이 내세상에서 이병헌과 형제로 나와 역시(?) 천재 피아니스트로 분한 것과
영화 '타짜', '시동', 그리고 최근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 하나도 똑같지 않은 역을 해내는것을 목격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첫 등장했을 때는 실로 깜짝 놀랐다... 흠흠...
다른 주연 배우들과 달리 누이로 분한 이수경은 나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드라마 '로스쿨'에서 처음 봤기 때문이다.
낭낭한 목소리와 딕션이 인상에 남았었는데...
흠.... 이 영화에서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간 인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비밀을 간직한 채 주인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누이.
조금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역을 정말 담담한 조로 말 해내는데 반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는 동화 같았다.
조금 슬프지만 희망을 주는 동화.
다른 것은 잼뱅이지만 수학 천재인 주인공과 그의 곁을 지켜주는 누이.
뮤즈가 꿈인, 잘나가는 집안의 여식인 여자친구와 너무 과묵한 아버지가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은 너무 오지여서 외부로 연결된 길이 없다.
주변으로 철로가 있어 기차가 오가지만 마을에 서지는 않는다.
역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읍내로 나가려면 멀리 철길을 따라 걸어 가장 인근에 있는 철도역까지 가야 한다.
언제 기차가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 발걸음을 재촉해 철로를 따라 굴을 4개나 지나고 큰 강도 지나야 한다.
당연히 적지 않은 이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에 천재소년인 주인공이 각고의 노력으로 간이역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엮은 드라마다.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감독이 영약(?)하게도 드라마에 반전과 판타지를 숨겨놓아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도와준다.
연기 자체는 등장인물 모두가 너무 힘이 들어가지도, 빼지도 않은 절제된 연기력을 보이며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했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만 모아놓은것 같았다.
다만 한가지... 여자친구로 나온 배우의 사투리는 듣기 좀 힘들었다.
본인은 각고의 노력을 했겠지만... 다른 배우들과 달리 좀 튀는 억양이 섞이면서 몰입을 방해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엉터리 사투리는 아니었지만... 좀 뭐랄까...
그냥 좀 아쉬웠다.
잠깐 잠깐 지나가는 영상미가 정말 좋았다.
스트리밍같은 영상이었으면 좀 멈추거나 느리게 보고싶은 장면이 여럿 있었다.
영화의 제작비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감독이 쓸데없이 마을을 재현하거나 하는데 공을 들이지 않았다. 마을 씬은 안나온다.
그냥 주인공 집 한 채만 나온다.
정말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대신 기차를 중심으로 제대로 1987년 전후의 그 시절을 고증하는데 온 힘을 쓴것 같았다.
요즘 한국 영화는 이런 세세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신경 써줘서 너무 좋고 고맙다.
마지막으로 영화 전반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했었다.
영화 상영 내내 그 시절 익숙한 음악들로 채워준 감독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도, 열차에서 누이와의 시간도 모두 아름다울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 영화를 한 번밖에 안봐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헌책방에서의 음악은 기억이 안난다.
둘의 캐미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감독이 만들어준 여백이었을까...
오랜만에 한 번 더 차분하게 보고싶은 생각이 들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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