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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톺아보기

친구 따라 잠든 전두환

by 바쁘다바빠 할아버지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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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1대,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가 11월 23일 역사적, 사법적 심판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향년 90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전씨는 자택 내에서 쓰러져 오전 8시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12·12 군사 쿠데타 동지 관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전씨도 세상을 뜬 것이다.

 

 


 

전두환은 누구?

 

전두환은 1931년 3월 출생한 함천 출신으로 1951년 육사 11기에 합격하였다.

 

1961년 서울대 학국단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5 · 16 쿠데타가 발생하자 육사생도들을 이끌고 군부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후에 이를 발판으로 박정희의 신임을 얻어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이 되었다.

 

박정희가 집권하자 노태우 등과 함께 육사 동기들로 구성된 "하나회"를 결성하였다. 

 

1979년 3월에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이 되고, 그 해 10월 박정희 사망 직후 계엄령에 의거하여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다. 전두환은 이를 기회로 여겨 하나회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도모하여 결국 12 · 12 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1980년 5 · 17 내란을 통해 헌정을 중단시켰다. 

 

곧바로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였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하여 국정의 실권을 잡았다.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 후 1980년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치뤄진 제 11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8차 개헌을 추진, 통과시킨 후 곧바로 1981년 2월 제 12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박정희 시절 시작된 체육관 선거를 통한 대통령 선출은 종식되고 전두환은 2대에 걸친 대통령이 되었다. 

 

 

 


 

서울의 봄과 5 · 18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세력이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이를 광주 폭동 진압이라고 불렀으나,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르고 있다.

 

 

1979년 12 · 12 군사반란으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피어오르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전두환은 전국을 비상계엄으로 묶어버렸다.

 

 

아무래도 12월이 대학교 방학때인만큼, 대학을 통한 저항은 이듬해 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국의 대학에서 집회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광주에서는 5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전두환은 곧바로 광주에 군부대를 투입했고, 과잉진압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수백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태로 발전했다. 

 

 

 

 

 

당시 투입된 계엄군은 시위대를 빨갱이라 부르며 강한 적대심으로 무장하였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전두환 정부와 이를 계승한 정당에서는 지금까지 북괴군이 개입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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